준공연도에 따라 누구는 100만 원 누구는 0원
소방차 전용구역 법의 허점
구축 아파트 95%는 여전히 ‘안전 사각지대’

2023년 준공된 광주광역시 북구의 한 신축 아파트. 이곳에서는 지난해 소방차 전용구역 불법주차로 73건의 과태료가 부과됐다. 적발된 주민은 1회 50만 원, 반복 시 100만 원이라는 강력한 금전적 제재를 받았다.
하지만 바로 옆, 2018년 이전에 지어진 아파트에서는 똑같이 전용구역을 막아도 과태료는 ‘0원’이다. 아파트 준공 연도라는 꼬리표가 화재 발생 시 생명을 구할 ‘골든타임’의 가치를 가르는 법의 역설이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 기이한 상황의 근원은 2018년 8월 개정된 소방기본법이다. 2017년, 29명의 목숨을 앗아간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는 불법주차 차량이 소방차의 진입을 30분 넘게 지연시킨 것이 결정적 원인으로 지목됐다.
비극적인 사건을 계기로 법이 개정되면서 신축 건물에 소방차 전용구역 설치가 의무화되고, 위반 시 최대 10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이 법은 ‘소급 적용 불가’라는 치명적인 맹점을 안고 있었다.
법 개정 이전에 사업계획 승인을 받은 모든 기존 건축물은 의무 대상에서 제외된 것이다.
그 결과 광주광역시의 경우 전체 922개 아파트 단지 중 불과 4.7%인 43곳만이 법의 테두리 안에서 보호받고 있으며, 소방청에 따르면 전국적으로도 법의 적용을 받는 공동주택은 15% 수준에 그친다. 85%의 구축 아파트는 여전히 안전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셈이다.

물론 현행 소방기본법 제25조는 소방대장에게 화재 진압 시 불법주차 차량을 강제로 이동시키거나 파손할 수 있는 ‘강제처분권’을 부여하고 있다. 하지만 법적 보장에도 불구하고 현장의 소방관들은 주저한다. 한 현장 소방관은 “차를 부수고 사람을 구하더라도, 이후 이어질 기나긴 민원과 소송을 생각하면 위축되는 것이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구축 아파트의 경우 주차 행위 자체가 법 위반이 아니기에, 차량 파손 시 법적 분쟁으로 번질 소지가 다분하다. 촌각을 다투는 화재 현장에서 소방관들이 법적 문제까지 고심해야 하는 이중고에 시달리며 골든타임은 속절없이 흘러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법 개정을 통한 ‘소급 적용’이 시급하다고 말한다. 막대한 비용이 드는 스프링클러 설치와 달리, 소방차 전용구역은 황색 선을 긋고 안내 문구를 도색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적은 비용으로 즉각적인 효과를 볼 수 있는 만큼, 소급 적용을 막을 명분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법률 전문가들 역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라는 공익적 가치가 사유재산권 보호보다 월등히 중요할 경우, 제한적인 소급 적용은 헌법적으로도 가능하다”는 의견을 제시한다. 도로 폭이 더 좁고 주차난이 심각한 노후 아파트일수록 소방차 진입이 어렵다는 점을 고려하면, 제도 보완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이러한 안전 불감증은 비단 아파트 단지 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도로 위 ‘작은 소방서’라 불리는 소화전 주변 5m 이내는 적색 노면표시와 함께 주정차가 금지된 구역이다. 위반 시 승용차 기준 8만 원의 높은 과태료가 부과되지만, 도심 곳곳에서는 소화전을 가로막은 불법주차 차량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결국 법과 제도의 개선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시민들의 인식 변화와 적극적인 참여다. 소방차 전용구역이나 소화전 주변 불법주차를 발견했다면, 행정안전부의 ‘안전신문고’ 앱을 통해 즉시 신고할 수 있다.
동일한 위치에서 1~5분 간격으로 사진 2장을 찍어 올리는 간단한 행동이 내 이웃의 생명을 구하는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다. 법의 빈틈이 우리의 안전을 위협하는 지금, 더 이상의 비극을 막기 위한 사회 전체의 노력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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