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우리나라 디자인이었다고?”… 유럽이 선택한 K-디자인, 세계시장 ‘트렌드 리더’로 우뚝

현대자동차의 '픽셀' 디자인이 메르세데스-벤츠의 차세대 GLC EV에 채택되며 K-디자인이 글로벌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다. 이상엽 부사장이 이끄는 디자인 혁신으로 현대차는 '패스트 팔로워'에서 '트렌드 세터'로 완전히 격상했다.

by 김하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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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츠 GLC EV 그릴, 현대차 ‘픽셀’ 디자인 채택
단순 모방 넘어 ‘전동화 철학’의 공감대 형성
이상엽 부사장, 디자인 혁신으로 ‘트렌드 세터’ 역할 선도

코나 일렉트릭
코나 일렉트릭 / 사진=현대자동차

글로벌 자동차 시장의 디자인 트렌드는 언제나 격렬한 ‘모방(Hommage)’과 ‘창조(Creation)’의 전쟁터였다. 특정 브랜드가 제시한 혁신적 디자인 언어가 시장의 표준으로 자리 잡으면, 경쟁자들은 이를 따르거나(Follow) 혹은 완전히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며 반격에 나선다.

이런 흐름 속에서 최근 가장 주목받는 현상은, 130년 역사의 프리미엄 브랜드 메르세데스-벤츠가 현대자동차의 핵심 디자인 요소를 차용한 사건이다.

벤츠 비전 아이코닉 콘셉트
벤츠 비전 아이코닉 콘셉트 / 사진=메르세데스-벤츠

메르세데스-벤츠 디자인을 총괄하는 고든 바그너(Gorden Wagener)는 최근 공개한 차세대 ‘GLC EV (GLC with EQ Technology)’와 ‘비전 아이코닉 콘셉트’를 통해 새로운 그릴 디자인을 예고했다.

주목할 점은 이 새로운 그릴이 현대자동차 아이오닉 라인업의 상징과도 같은 ‘픽셀(Pixel)’ 패턴으로 가득 채워졌다는 사실이다. 실제 벤츠가 공개한 GLC EV(코드명 X540)의 전면부에는 942개의 LED 도트가 픽셀 형태로 배열되어 애니메이션 효과를 연출한다.

과거 내연기관의 ‘냉각’을 상징했던 그릴이 전동화 시대에는 ‘디지털 아이덴티티’를 표현하는 캔버스가 된 것이며, 그 표현 방식으로 벤츠마저 현대차의 ‘픽셀’을 선택한 것이다.

벤츠 비전 아이코닉 콘셉트
벤츠 비전 아이코닉 콘셉트 / 사진=메르세데스-벤츠

이 현상이 단순한 스타일링 차용을 넘어선 의미를 갖는 이유는 현대자동차가 ‘픽셀’ 디자인에 부여한 강력한 철학 때문이다. 현대자동차는 지난 2019년 9월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EV 콘셉트 45’를 공개하며 픽셀 디자인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는 단순히 복고풍(Retro) 스타일링이나 기하학적 무늬를 넘어선, 전동화 시대에 대한 깊은 고찰의 산물이었다.

현대 아이오닉5
현대 아이오닉5 / 사진=현대자동차

당시 디자인을 주도한 이상엽 현대·제네시스 글로벌 디자인센터장(부사장)은 “모든 디지털은 픽셀로 이루어져 있다”며 “전동화 모델에는 아날로그 시대의 그릴과는 다른 새로운 디자인 요소가 필요했고, 디지털의 최소 단위인 ‘픽셀’이야말로 그 본질을 상징한다”고 그 철학적 배경을 꾸준히 밝혀왔다.

이처럼 ‘픽셀’은 디지털 시대로의 전환을 알리는 현대차의 고유한 시그니처로 자리 잡았으며, 아이오닉 5, 6, 7은 물론 코나, 스타리아 등 다양한 라인업으로 확산되며 브랜드의 정체성을 구축했다. 벤츠가 이 픽셀을 채택했다는 것은, 이 디자인 언어가 특정 브랜드를 넘어 ‘전동화 시대의 표준’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는 강력한 증거다.

그란데 판다
그란데 판다 / 사진=피아트

현대자동차 디자인의 영향력은 픽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최근 글로벌 시장에 등장하는 신차들 곳곳에서 현대차와 제네시스의 디자인 DNA가 발견되고 있다. 피아트(Fiat)가 최근 공개한 소형 SUV ‘그란데 판다(Grande Panda)’는 전면부 헤드램프와 그릴, 범퍼 하단부, 심지어 테일램프까지 노골적인 픽셀 그래픽을 적용했다.

차체 크기(전장 3,990mm)는 현대 싼타페(전장 4,830mm)보다 훨씬 작지만, 그 디자인 인상은 ‘싼타페의 동생’이라 불릴 만큼 유사성이 짙다.

토요타 센추리 SUV
센추리 SUV / 사진=토요타

프리미엄 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토요타(Toyota)가 일본 내수 시장의 플래그십 모델로 출시한 ‘센추리 SUV’는 제네시스 GV80과 극도로 흡사한 ‘두 줄(Two-line)’ 램프 디자인으로 출시 직후부터 논란의 중심에 섰다.

물론 센추리 SUV(전장 5,205mm / 휠베이스 2,950mm)는 쇼퍼 드리븐(Chauffeur-driven) 시장을 겨냥한 모델로, 오너 드리븐(Owner-driven) 중심의 준대형 럭셔리 SUV인 제네시스 GV80(전장 4,940mm / 휠베이스 2,955mm)과는 체급과 지향점이 다르다.

하지만 램프의 구성과 배치 방식은 명백히 제네시스의 성공적인 디자인 코드를 의식한 결과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디 올 뉴 그랜저
디 올 뉴 그랜저 / 사진=현대자동차

물론 그랜저와 코나 등에 적용된 ‘심리스 호라이즌 램프(일자 램프)’ 역시 글로벌 트렌드가 되었다. 하지만 경쟁사들이 스타일링을 모방하더라도 현대자동차의 기술적 완성도까지 따라잡지는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벤츠 EQS 등 일부 모델이 수평형 램프를 시도했지만, 그랜저처럼 완벽하게 하나로 이어지지 못하고 중앙이 끊어져 있거나 로고로 분리된 형태를 보인다. 이는 얇고 긴 램프를 균일한 밝기로 구현하면서 동시에 충돌 안전 규제까지 만족시키는 것이 고도의 기술력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은 ‘심리스 호라이즌 램프’ 구현을 위해 “수백 개의 LED가 발산된 빛을 반사체를 거쳐 1차, 2차 이중 구조의 이너 렌즈를 통과시켜” 균일한 빛을 확산시키는 복잡한 간접광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아이코닉9
아이코닉9 / 사진=현대자동차

과거 현대자동차는 글로벌 시장에서 ‘헥사고날 그릴’ 등 유력 브랜드의 디자인 트렌드를 따르는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의 입장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상엽 부사장이 이끄는 디자인 혁신 이후, 이제는 ‘픽셀’과 ‘심리스 호라이즌’이라는 고유의 철학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메르세데스-벤츠와 같은 거대 프리미엄 브랜드가 그 뒤를 따르는 ‘트렌드 세터(Trend Setter)’로 완벽히 격상했다.

디자인은 더 이상 단순한 외형이 아닌, 그 브랜드의 철학과 기술력을 담는 그릇이다. 지금 세계 자동차 시장은 현대자동차가 빚어낸 그릇의 형태를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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