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산 대형 세단 시장은 오랜 세월 동안 프리미엄 소비자들의 핵심 선택지였다. 그러나 제네시스 브랜드 독립과 SUV의 급부상, 하이브리드·전기차 중심 소비 트렌드 전환이 맞물리면서 시장 구도 자체가 빠르게 뒤바뀌었다. 기아의 플래그십 대형 세단 K9이 이 흐름을 피하지 못한 채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려 하고 있다.
2012년 오피러스의 후속 격 플래그십 세단으로 출시된 K9은 1세대 최상급 트림에 5.0L V8 가솔린 엔진을 얹으며 국산 최고급 세단의 상징으로 자리했다.
2018년 2세대 모델은 주요 기업 임원 의전차로 활용되며 브랜드 위상을 이어갔지만, 업계에 따르면 기아는 올해 말 K9 생산을 종료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페이스리프트·풀체인지·연식 변경 모델 개발도 중단·보류한 상태다.
6,585대에서 734대로, 4년간 판매량 추락

판매 궤적이 K9의 위기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2022년 연간 6,585대를 판매하며 존재감을 유지했던 K9은 이듬해인 2023년 3,898대로 약 40% 줄었고, 최근 연간 판매량은 1,581대 수준까지 쪼그라들었다.
올해 상반기(1-6월) 실적은 734대에 불과해, 연말까지 이 추세가 이어진다면 연간 1,500대를 밑도는 사실상 틈새 판매에 머물게 된다. 4년 새 판매량이 10분의 1 수준으로 수렴한 셈이다.
K9을 둘러싼 삼중 압박

K9 수요 이탈의 배경에는 세 갈래 경쟁이 동시에 작용했다. 우선 제네시스 G80은 2020년 3세대 출시 이후 연간 4만-5만 대 수준의 판매를 꾸준히 기록하며 국산 프리미엄 세단 수요를 대거 흡수했다. 가격이 1억 원을 넘는 G90도 연간 약 1만 대의 고정 수요를 확보해 고급 세단 소비자층에서 K9보다 강한 선택지로 자리 잡았다.
여기에 현대차 그랜저가 차체를 키우고 고급 사양을 확대하면서 준대형 세단이면서도 K9과 유사한 고급감을 제공하게 됐고, 승차감·정숙성이 대폭 개선된 대형 SUV의 확산도 과거 대형 세단의 전유물이던 안락함을 대체하며 수요 이탈을 가속했다.
하이브리드 없이 시대를 버틴 대가

K9 판매 감소에 내부 요인도 크게 작용했다. 기아는 중형 세단 K5와 준대형 세단 K8에는 하이브리드 모델을 운영했지만, K9에는 끝내 하이브리드·전동화 파워트레인을 추가하지 않았다.
가솔린 엔진 중심의 라인업을 유지한 채 연비와 친환경성을 중시하는 소비 트렌드를 마주하면서 경쟁 모델 대비 선택 매력이 점차 떨어졌다. K9 단종 이후에는 준대형 K8이 기아 플래그십 세단 지위를 일부 승계할 것으로 시장에서는 전망하고 있다.
내연기관 대형 세단을 넘어 미래차 전략으로

기아는 K9 생산 종료로 확보될 생산 역량을 전동화·PBV·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 사업에 집중한다는 방향을 추진하고 있다. EV2·EV4·EV5로 이어지는 전기차 라인업을 확장해 2030년까지 총 14종의 전기차 풀라인업 구축을 목표로 삼고, 목적기반차량(PBV) 분야에서도 PV5를 시작으로 PV7·PV9을 순차 투입할 계획이다.
그룹 차원의 첫 SDV인 소형 전기 해치백 프로젝트 XV1을 한국·유럽에 선보이고, 2029년 도심 환경에서 핸들 비접촉 주행이 가능한 레벨2++ 자율주행 기술 상용화도 중장기 목표로 내걸었다.

K9의 단종은 단순한 모델 하나의 퇴장이 아니라, 국산 브랜드가 대형 내연기관 세단 시대를 마무리하고 전동화·플랫폼 중심 모빌리티로 체질을 전환하는 상징적 분기점으로 읽힌다. 기아가 세단 라인업을 정리하면서 얻는 자원이 전기차·PBV·SDV로 흘러들어 가는 흐름이, 앞으로 기아 브랜드 경쟁력의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
K9을 고려하던 소비자라면 올해 말 생산 종료 전에 재고 물량을 서둘러 확인하는 편이 좋다. 후속 차종 개발이 불투명한 만큼, 기아 대형 세단의 공백을 메울 대안으로 K8 상위 트림이나 제네시스 브랜드를 함께 비교해 선택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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