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만의 단종 뒤에 가려진 정전 사태와 노사 갈등

2008년, 독특한 박스카 디자인으로 전 세계의 이목을 끌었던 기아의 아이콘 기아 쏘울이 17년간의 여정을 마치고 오는 10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글로벌 누적 판매 233만 대, 그중 95% 이상을 수출하며 기아의 브랜드 이미지를 세계에 각인시킨 효자 모델의 쓸쓸한 퇴장이다.
하지만 하나의 모델이 사라지는 풍경 뒤로, 더 거대한 변화의 그림자가 기아 내부에 드리우고 있다. 쏘울 단종 공식 발표 하루 전 터져 나온 의문의 공장 정전과 5년 만의 파업 위기를 불러온 노사 교섭 결렬은, 기아가 맞이한 거대한 ‘성장통’의 서막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기아 쏘울의 단종은 ‘선택과 집중’이라는 기아의 냉정한 경영 전략이 낳은 필연적인 결과다. 쏘울은 지난해에도 북미 시장에서 약 6만 대가 팔릴 만큼 꾸준한 수요를 유지했지만, 기아의 시선은 더 큰 시장을 향하고 있다.
쏘울을 생산하던 광주 2공장의 라인은 기아의 명실상부한 글로벌 베스트셀러, 기아 스포티지의 증산을 위해 전환된다.

기아 스포티지는 2024년 한 해에만 전 세계에서 약 59만 대가 팔렸으며, 현재도 막대한 출고 대기 물량이 쌓여있는 최고 인기 모델이다.
여기에 내년에는 또 다른 주력 소형 SUV ‘셀토스’의 2세대 완전변경 모델 출시도 예정되어 있다. 기아는 수익성이 더 높은 주력 모델에 역량을 집중함으로써, 최대 실적을 경신 중인 현재의 상승세를 더욱 가속화하겠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이 거대한 전환 과정은 순탄치만은 않은 듯하다. 공교롭게도 쏘울 단종 발표 바로 전날인 지난 11일, 광주 2공장에서는 두 가지 심상치 않은 사건이 연달아 발생했다.
오전 8시경, 원인 불명의 정전으로 도장 라인이 멈춰 서며 쏘울과 스포티지 생산이 7시간가량 중단됐다. 기아 측은 “전기 차단기 문제”라고 해명했지만, 핵심 생산기지에서 발생한 갑작스러운 정전은 생산라인 재편 과정에서 불거진 내부 시스템의 균열은 아닌지 의구심을 낳고 있다.

같은 날 오후, 기아 노동조합은 사측과의 5차 본교섭 결렬을 선언했다. 노조는 사상 최대 실적에 대한 정당한 분배를 요구하고 있다. 기아는 2024년 12조 6,700억 원이라는 창사 이래 최대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이를 근거로 노조는 △기본급 141,300원 인상 △영업이익의 30%(약 3.8조 원) 성과급 지급 △정년 만 64세 연장 △주 4일제 도입 등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사측이 난색을 표하며 협상이 평행선을 달리자, 노조는 결국 중앙노동위원회 조정 신청이라는 강수를 뒀다.

노사 갈등이 중앙노동위원회 조정에서도 실패할 경우, 노조는 합법적인 파업권을 확보하게 된다. 만약 실제 파업으로 이어진다면, 2020년 이후 5년간 이어져 온 기아의 ‘무분규’라는 안정적 노사 관계의 신화는 깨지게 된다.
이는 단순한 임금 협상 결렬을 넘어, 안정적인 생산을 기반으로 성장해 온 기아의 경영 전략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특히 쏘울 라인을 전환해 생산을 늘리려던 스포티지의 출고 지연은 불 보듯 뻔한 수순이다.

결국 쏘울의 단종, 공장 정전, 노사 갈등은 각각의 개별 사건이 아닌, 기아가 더 높은 곳으로 도약하기 위해 겪는 거대한 성장통의 여러 단면으로 해석된다. 17년간 기아의 개성을 상징했던 쏘울은 이제 조용히 퇴장한다.
그러나 그 빈자리를 채우기 위한 내부의 숨 가쁜 변화와 그 과정에서 터져 나오는 갈등은, 기아의 미래가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전체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