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속 95km까지 ‘Eyes-Off’ 구현

자동차 역사 130여 년 만에 운전의 패러다임이 근본적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시스템이 운전의 모든 권한과 책임을 넘겨받는 ‘조건부 자율주행’, 즉 자율주행 레벨 3 시대의 문을 연 메르세데스-벤츠 드라이브 파일럿이 독일 뮌헨 IAA 모빌리티 2025 현장에서 그 현실적인 모습을 드러냈다.
시속 95km로 달리는 고속도로 위 EQS 차량에서 운전자가 운전대에서 손을 놓고 도로에서 눈을 떼는 ‘Hands-off, Eyes-off’가 가능해진 것이다. 이는 단순한 편의 기능을 넘어, 자동차를 ‘운전의 공간’에서 ‘생활과 휴식의 공간’으로 바꾸는 역사적 전환의 시작점이다.

메르세데스-벤츠는 2022년 5월, 세계 최초로 국제 법규인 UN-R157을 충족하는 레벨 3 시스템 ‘드라이브 파일럿’을 S-클래스와 EQS에 탑재해 독일에 출시하며 기술 리더십을 증명했다.
이 시스템의 핵심은 LiDAR, 스테레오 카메라, 레이더 등 첨단 센서와 고정밀 HD 지도를 융합하고, 조향·제동·전원 등 모든 핵심 장치에 백업 시스템을 갖춘 ‘리던던시(이중화)’ 설계에 있다.
이는 어떠한 돌발 상황에서도 시스템이 안전하게 대처할 수 있다는 기술적 자신감의 표현이며, 상용화 이후 현재까지 단 한 건의 관련 사고도 없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하지만 IAA 2025 현장에서 경험한 드라이브 파일럿은 완전한 자유가 아닌, ‘조건부 자유’의 현실을 명확히 보여주었다. 시스템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고속도로 △주간 및 맑은 날씨 △가장 오른쪽 저속 차선 △선행 차량 존재 등 여러 조건이 동시에 충족되어야만 했다. 최고 속도 역시 시속 95km로 제한된다.
이는 기술의 한계라기보다, 예측 불가능한 변수를 완벽히 통제하며 운전자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확보하려는 벤츠의 보수적이면서도 책임감 있는 접근 방식을 보여준다. 시스템은 스스로 모든 조건을 판단해 준비가 되면 스티어링 휠의 버튼에 불을 밝혀 운전자에게 활성화를 제안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진정한 혁신은 인간과 기계가 소통하는 방식, 즉 휴먼-머신 인터페이스(HMI)에 있었다. 드라이브 파일럿은 내비게이션과 연동해 전방에 진입 차선이 나타나거나 자율주행 가능 구간이 곧 끝날 것 같으면, 수십 초 전에 미리 알람과 진동으로 운전자에게 제어권 전환을 준비시킨다.
선행 차량이 갑자기 차선을 바꾸거나 95km/h 이상으로 가속해 사라지는 경우에도 즉각 운전자의 개입을 요청한다. 이처럼 시스템이 자신의 한계를 명확히 인지하고 운전자와 끊임없이 소통하며 예측 가능한 상황을 만들어주는 과정은, 기술에 대한 운전자의 ‘신뢰’를 구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물론 저속 차선에서 상대적으로 느린 화물차를 따라가야 하는 상황에 대한 효율성 우려도 제기된다. 이에 대해 벤츠 측은 약 400km 구간을 테스트한 결과, 일반 주행 대비 도착 시간 차이는 25분에 불과했다고 설명하며 시간적 손실이 크지 않음을 강조했다.
메르세데스-벤츠는 현재의 한계에 머무르지 않는다. 이미 최고 속도를 130km/h까지 상향하고, 중앙 차선에서도 기능을 사용할 수 있도록 독일 정부와 승인 절차를 논의 중이다.
이는 기술이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청사진이다. 이러한 행보는 당초 G90, EV9 등에 탑재를 예고했다가 잠정 보류한 현대자동차의 HDP 사례와 대조되며 레벨 3 상용화의 높은 기술적 장벽을 실감케 한다.

국내 도입 시점은 아직 ‘준비 중’이라는 원론적인 답변만 돌아왔다. 각국의 도로 환경과 교통 법규, 통신 인프라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드라이브 파일럿이 제시한 조건부 자율주행의 현실은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비록 제한된 조건 속에서지만, 자동차가 스스로 책임지고 달리는 시대를 연 벤츠의 이정표는, 완전 자율주행을 향한 인류의 여정에서 가장 의미 있는 첫걸음으로 기록될 것이다.

















전체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