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발진 주장 사고 401건 중 85%는 페달 오조작
이를 막기 위한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
일본은 이미 거의 모든 신차에 장착

‘급발진’이라는 단어는 운전자에게 공포 그 자체다. 하지만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냉정한 데이터는 이 공포의 실체가 상당 부분 ‘오해’에서 비롯됐음을 보여준다. 2020년부터 2024년까지 국과수가 감정한 급발진 주장 사고 401건 중 무려 341건, 즉 85%는 차량 결함이 아닌 운전자가 브레이크 페달 대신 가속 페달을 밟은 ‘페달 오인’ 사고였다.
이 문제는 더 이상 개인의 실수로 치부할 수 없는 사회적 재난으로 번지고 있다. 대한민국은 65세 이상 운전면허 소지자가 516만 명(2024년 기준)을 넘어서며 전체 운전자의 14.9%를 차지하는 초고령 사회에 진입했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해 판명된 페달 오인 사고 120건 중 96건은 60세 이상 운전자가 일으켰다는 통계는 이 문제의 심각성을 여실히 드러낸다.

이처럼 예측 불가능한 실수를 막기 위해 개발된 기술이 바로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다. 기술의 원리는 명료하다. 차량 전후방의 센서가 벽이나 다른 차 같은 장애물을 감지한 상태에서 운전자가 갑자기 가속 페달을 깊게 밟으면, 차량의 ECU(전자제어장치)가 이를 위험한 오조작으로 판단해 엔진이나 모터의 출력을 제어하여 급가속을 막는다.
이 기술의 효과는 이미 전 세계적으로 입증됐다. 지난해 유엔 유럽경제위원회(UNECE)는 이를 ‘ACPE(Acceleration Control for Pedal Error)’라는 이름의 국제 자동차 안전기준으로 공식 채택하며 글로벌 표준으로 공인했다.

가장 모범적인 사례는 이웃 나라 일본이다. 일본은 2019년 도쿄 이케부쿠로에서 발생한 고령 운전자 차량 돌진 사고로 11명의 사상자가 나온 이후, 정부와 지자체가 나서서 보조금을 지급하며 장치 설치를 강력하게 장려했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만으로 관련 사고의 약 63%를 예방할 수 있었고, 긴급 제동장치(AEB)와 결합하자 예방 효과는 90%를 넘어섰다. 이러한 정책적 지원에 힘입어 2023년 기준 일본에서 생산된 신차의 93.8%가 이 장치를 기본 사양으로 갖추게 됐다. 나아가 일본 정부는 2028년 9월부터 모든 신차에 장치 장착을 의무화할 계획이다.

반면, 한국의 현실은 처참할 정도로 대조적이다. 전국에 등록된 차량 약 2,500만 대를 고려할 때, 이 안전장치의 보급률은 고작 0.01% 수준에 머문다. 정부의 지원은 생색내기에 가깝다.
국토교통부가 지난해 무료 설치를 지원한 고령 택시 기사는 전국에서 60명, 올해 상반기 한국교통안전공단 등이 65세 이상 운전자를 대상으로 지원한 건수도 200명에 불과했다. 이마저도 특정 지역에 한정되어 경기도 등 일부 지자체는 아예 지원 대상에서 제외됐다.
국산 신차 중 이 기능을 기본으로 탑재한 모델은 최근 출시된 현대 캐스퍼 일렉트릭의 ‘페달 오조작 안전 보조(PMSA)’ 기능이 유일하다. 기술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정책이 부재한 것이다.

설치가 저조한 가장 큰 원인은 단연 ‘비용’이다. 애프터마켓에서 장치를 구매해 설치하려면 약 40만 원이 드는데, 중앙정부의 보조금은 전무하다. 일부 지자체가 예산 부족을 이유로 지원을 외면하면서, 설치를 원해도 비용 부담에 포기하는 고령 운전자가 대다수다.
다행히 국토교통부는 UNECE의 국제 기준 채택 이후 기존의 신중한 입장을 바꿔, 올해 하반기 입법예고를 거쳐 내년부터 출시되는 신차에 장치 장착을 의무화하는 법안을 추진 중이다. 늦었지만 분명 환영할 만한 변화다.

하지만 이 정책에는 치명적인 허점이 존재한다. 바로 이미 도로를 달리고 있는 수많은 기존 차량은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점이다. 법이 시행되더라도 고령 운전자들이 주로 운행하는 연식 있는 차량들은 안전의 사각지대에 그대로 방치되는 셈이다.
국토부 관계자 역시 “기존 차량에 대한 강제 설치는 법적으로 어렵다”며 캠페인과 시범 사업을 통한 유도 계획을 밝히고 있지만, 이는 실효성이 떨어지는 미봉책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일본의 성공 사례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강조한다. 해법은 ‘의무화’와 ‘보조금 지원’이라는 두 개의 축을 동시에 가동하는 것이다. 과거 에어백이 처음 도입될 때도 가격 상승에 대한 저항이 있었지만, 정부의 강력한 의무화 정책과 지원이 맞물리면서 단기간에 보편적인 안전장치로 자리 잡았다.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 역시 같은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대중교통 인프라가 취약해 자가용 의존도가 절대적인 농어촌 지역의 고령 운전자에게 이 장치는 단순한 편의 장비가 아닌, 사고를 막는 ‘최후의 안전망’이 될 수 있다.
신차 의무화라는 첫걸음은 뗐지만, 수백만 기존 운전자들의 안전까지 포용하는 과감한 재정적, 정책적 결단이 시급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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